총 188분 중 180분
2022
시즌 2개, 그리고 영화
시즌 2: 9화 “2”
이 혼마루는 편애로 돌아가고 있다.
출연: 닛코 이치몬지, 산쵸모, 부키츠마루
장르: 도검난무, BL?
프로그램 특징: 집착

살아있다면 죽음과 가깝다. 정반대에 있을 수록 가깝다. 생은 종이 한 장 같은 것이라, 앞면과 뒷면이 존재하는 것이 당연한 이치. 다만 뒤집으면 도로 엎을 수 없는 종이. 그 끝과 끝이 분명한 것을 한 쪽을 잡아 한 바퀴 꼬아 다른 한 끝과 연결시키면 앞면이자 뒷면이 된다. 이런 것을 뫼비우스의 띠라고 한다는 것을 근래에 배운 적이 있다. 제법 흥미로운 모양새였다. 앞이자 뒤이며, 살아있으며 죽어있는 것. 삶과 죽음이 중첩된 상태라는 것은 겉보기엔 즐겁지만 그것을 어떻게 쓸 것인가에 대해 물으면 답이 나오지 않는 것이다. 한 장이라 부를 수 없게 된 종이는 제 용도를 잃는다. 앞면도 뒷면도 될 수 없는 것에게 마음을 묻는다면, 아마도ー.

 

 

하늘은 맑고 푸르렀다. 해가 진 뒤의 출진이었으니 해가 뜬 이후에 정리가 되었다는 뜻이고, 일은 어둠 속에서 치러졌다는 뜻이었다. 마른 흙 군데군데 질척이는 짙은 흙, 깊게 남은 발자국, 칼의 궤적을 그린 핏자국, 부러진 칼날, 잘도 움직이는 벌레, 잘린 신체의 말단, 자리를 벗어난 돌멩이, 고인 핏물, 휘말린 작은 꽃, 으스러진 생명, 따뜻한 햇빛 아래 제 색을 되찾는 흙, 시작한지 꽤 지난 죽음… 많은 것들이 위에 있었다. 이중에서 종이 위에 적을 것이 걸러지고, 많은 것이 버려지고, 남은 것을 다시 나누어 다른 종이에 옮겨 적으면 나에게 도달한다(번쩍이는 판을 보는 것은 눈이 익숙치 않아 힘들어하니 배려 받고 있다. 고마운 일이다.). 질좋은 하얀 종이에 거침없이 내려간 검은 글씨가 번짐도 없이 건조하게, 검은 가죽 장갑에 들려서 나에게.

 

후쿠오카 이치몬지 ‘일가’의 일처리 방식을 종이에 정리된 숫자가 아닌 두 눈으로 확인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일찍이 다른 검들의 출진은 본 적이 있다. 함께 한 적도 있다. 보통 주인인 나를 전장의 죽음에서 띄워놓는다. 언젠가 헤시키리 하세베가 다 정리되어 흔적이 거의 남지 않은 것을 보여주었다. 고마운 배려였지만 내가 보고 싶어한 것을 없애 헛걸음하게 만든 것이었다(뒤늦게 자책하는 것을 적당히 다그치고 말았더니 한 번은 피를 온몸에 뒤집어쓰고 귀성하였다. 카센 카네사다가 질색하였다.). 후쿠오카 이치몬지의 수장, 산쵸모의 현현이 가장 늦었으므로 후쿠오카 이치몬지 ‘일가’의 출진은 최근에야 이루어졌다. 내키지 않았지만 닛코 이치몬지가 말없이 원했다. 장시간을 내줄 수는 없다 하니 난센 이치몬지가 취침 시간 즈음에 나가 기상 시간 즈음에 돌아오면 되지 않냐, 하였다. 히메츠루 이치몬지마저 ‘도도군은 꿈에서 기다려.’라며 본체를 쥐었다. 이치몬지 노리무네는 그저 웃을 뿐이었다. 산쵸모는 걱정하지 말라며(아마 산쵸모가 생각하는 것과는 다른 걱정일 수도 있겠지만.) 가장 먼저 발을 돌렸다. 닛코 이치몬지에게 손수 부적을 걸어주었지만 그럼에도 잠에 들 수는 없었다. 해가 뜰 무렵 후련한 얼굴로 돌아온 닛코 이치몬지를 보고나서야 눈꺼풀을 닫았다. 이러한 이유로 후쿠오카 이치몬지 일가의 출진은 드물었지만 아예 없애진 못했다. 벚꽃잎을 날리는 닛코 이치몬지를 봐버렸기 때문에. 손에 꼽는 일가의 출진지에 직접 간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처음부터 함께하는 것은 반려당해 일이 끝난 전장을 보러 간 것이었다.

 

갈 수록 죽음을 쫓는 것은 스스로도 인지하고 있다. 내가 기억하는 최초의 죽음을 벗어난 날 이후로도 몇 번의 죽음이 있었다(닛코 이치몬지만이 알고 있다. 야겐 토시로와 난카이 타로 쵸우손도 여기까지는 알지 못한다.). 다시 살아날 수록 무언가 꼬이고 뒤섞이는 감각 속에 빠진다. 나의 검은 칼날이 검게 물들었다. 이유는 알 수 없다. 알 수 없는 것이 늘어간다. 내가 아는 것이 사라진다. 나는 누구이고, 무엇이고, 나는… 어지러운 시계 속에서 검은 형체가 가까워지면 그곳부터 조금씩 초점을 맞춘다. 검은 가죽 장갑이 붙든 손, 차가운 가죽 위에 더 차가운 가죽의 감촉이 느껴지므로 붙들린 손은 나의 손이다. 차가운 가죽 아래에 따뜻한 것이 있을지는 모른다. 손을 움직여 가죽 장갑을 벗겨보고 다른 가죽에 나의 가죽을 대봐야 알고, 안심할 수 있다. 정말 그 안에 따뜻한 것이 있다고는 확신할 수 없지만 이렇게라도 위안을 얻어야 하는 것이다. 꼬인 종이 위에 선을 그어야 아직은 종이라며 안심할 수 있는 것이다. 죽음과 가까워져야 삶을 알 수 있는 것이다. 도검남사가 만들어낸 누군가의 죽음의 흔적이 나의 삶의 증명이 되는 것이다.

 

 

습격이다! 목을 늘어놓고 무위를 과시해라.

 

 

난센 이치몬지의 입으로 들은 적이 있는 산쵸모의 말. 실천이 되는지는 알 수 없었던 것은 양옆으로 나란히 늘여진 수급으로 증명되었다. 깔끔하게 베인 것이 있으면 거칠게 난도질 당한 것도 있었다. 게이트를 넘어온 나를 마중 나온 닛코 이치몬지가 앞을 막고 ‘힘들다면 눈을 감아도 괜찮다.’라며 손을 내밀었었다. 그 손을 잡지 않은 것을 후회할정도로, 동시에 강렬하게 속을 휘젓는 선혈의 연회가 사방에 가득했다. 삶과 죽음이 한데 모여있었지만 섞이진 않았다. 산 것은 산 것의 모습을, 죽은 것은 죽은 것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이르게 뜬 태양이 뚜렷한 그림자를 남기고 있었다. 닛코 이치몬지의 하얀 코트 위에 그어진 붉은 길이 포도 덩굴같은 모양으로 또렷했다. 입가에 손을 가져가니 닛코 이치몬지가 살짝 고개를 숙여 눈을 마주쳤다. “주인, 잠시.” 짧게 동의를 구하고선 피가 묻은 장갑을 벗어 따뜻한 손을 내 어깨 위에 올려 살짝 당겼다. 울렁거림 속에서 웃음이 새어나왔다. 손이 올라간 어깨는 하얫지만 코트에 비벼진 팔은 살짝 붉게 물들었다. 웃음이 나왔다. 닛코 이치몬지도 아직 흥분이 가시지 않았는지 살짝 벌린 입꼬리가 올라가있었다.

 

꽤 길게 죽음이 이어졌다. 주어졌던 시간을 생각하면 경이롭고 끔찍한 결과다. 나와 거리가 가까워지자 산쵸모가 고개를 살짝 숙였다. 따라서 남은 일가들도 고개를 숙였다. 닛코 이치몬지 또한 그 틈 사이에 자리를 잡아 마찬가지로 고개를 숙였다. 고개를 든 산쵸모의 얼굴은 당당하면서도 살짝 찡그린 미소를 짓고 있었다.

 

“주인에게 처음으로 보이는 것이니 특별히 공을 들였어. 어떤가? 코토리는 이걸로 만족하려나?”

 

나의 눈이 아닌 자신의 발치에 놓인 머리의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저것이 대장일 것이다. 산쵸모의 앞까지 걸어가 그 머리를 들었다. 약간 무거운 머리가 볼품없이 죽어있었다. 쓸모를 다한 머리로 누군가에게 남아있는 기억으로 점을 칠 수 있었다. 손가락 틈으로 끈적이는 피가 흘렀다.

 

“나쁘지 않다.”

 

그리고 닛코 이치몬지가 내 손에 들린 머리를 앗아갔다. 시선이 내가 아닌 산쵸모를 향하고 있었다. 산쵸모는 바로 앞에 있는 나에게서 머리를 치우기 위해 조금 떨어진 곳에 있던 닛코 이치몬지를 부른 것이다. 당연하게도 나와 눈이 맞은 산쵸모가 뜻모를 미소를 지었다. 어느새 자신의 가슴팍에 꽂혀있던 손수건을 뽑아 조심스레 내 손에 묻은 피를 닦아주었다.

 

“코토리가 직접 손을 더럽힐 필요는 없다. 다음부터는 원하는 것을 말만해도 괜찮아.”

 

다정한 손길과 말 아래에 무엇이 있을지는 모른다. 차가운 칼날로 선을 긋고 있을지도, 따뜻한 인간의 정이 있을지도 나로서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적어도 이 다정이 자신의 위에 있는 주인을 생각하는 것은 아닌 것은 알 수 있었다. 뒤틀린 것이 아니었다 하여도 제대로 종이 취급을 해줄 것으로 보이진 않았다. 단단한 결속으로 묶인 집단의 우두머리로써 자신이 인정이 중요하고, 나는 아직 그 인정을 받지 못한 것이었다. 주인이라 하는 것은 형식상의 것, 장식에 불과하다. 꼬인 종이를 보고 흥미로워했던 과거가 떠올랐다. 정반대에 있을 수록 가까운 것, 가깝기 때문에 정반대에 있을 수밖에 없는 것. 종이 한 장의 차이보다도 가까운 것. 눈 앞에 있는 검과 겹쳐질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필요 없는 말이다, 산쵸모.”

 

겹쳐질 수 없다면ー.

 

“주인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아직 모르는 모양이군.”

 

붉은 두 눈이 서로 겹쳐졌다.

''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공포 소재 썰 모음  (0) 2024.11.21
사랑은 방울방울  (0) 2024.11.20
금붕어 좋아해?  (0) 2024.11.19
성장 일지  (0) 2024.11.18
거짓말의 방  (0) 2024.11.17
종이 한 장
낮음 보통 다소높음 높음 매우높음
낮음 보통 다소높음 높음 매우높음
낮음 보통 다소높음 높음 매우높음
낮음 보통 다소높음 높음 매우높음
낮음 보통 다소높음 높음 매우높음
낮음 보통 다소높음 높음 매우높음
낮음 보통 다소높음 높음 매우높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