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의 얼굴 앞으로 붉은 금붕어가 헤엄치는 것을 보았다.
닛코 이치몬지는 검은 옷을 입어서 다행이라 생각했다. 짙고 어두운 검은색 자켓은 속에 감춘 비밀을 쉽사리 보여주지 않았다. 이른 새벽부터 작은 버스 뒷자리에 앉아 검은색 자켓을 벗어 적당히 접어서 들고 있는 사내는, 얼핏 보면 급하게 장례식에 참석하느라 더위에 지친 사람으로 보일 것이다. 닛코 이치몬지는 장례식의 원인에 가까운 사람이라는 점만 빼면 말이다.
닛코 이치몬지, 닛코는 야쿠자 후쿠오카 이치몬지파의 와카가시라 보좌다. 조직을 크게 굴리는 건 닛코의 윗사람이고, 자잘하게 일을 수행하는 건 닛코의 아랫사람이다. 쉽게 말해 중간에서 말 전해주면서 뛰어다니는 간부다. 현재 후쿠오카 이치몬지파에는 부재중인 주요 인력이 꽤 있는 상태이므로, 직급이 오르기 전보다 더 바쁜 역할이 되었다. 닛코는 딱히 이것에 불만은 없었다. 그것이 조직에 은혜를 갚을 수 있는 일이라면 기뻤고, 적임자가 저 뿐이라면 할 수밖에 없다 생각했다. 실제로 닛코는 자신의 일을 잘 해냈다. 윗사람의 명령과 투정을 적당히 걸러낼 줄 알았고, 아랫사람의 적재적소를 잘 맞출 수 있는 눈썰미가 있었다. 그렇게 와카가시라인 산쵸모의 신임을 얻고 있었고, 산쵸모가 회장 후보 명단에 이름이 오를 수 있도록 충성을 바치고 있었다. 닛코는 산쵸모의 능숙한 왼날개로 기능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갑작스러운 총기 사고 또한 닛코가 처리해야 하는 일이라는 뜻이다.
후쿠오카 이치몬지파 내에서 총기 사용은 엄격하게 관리되는 편이다. 야구배트를 휘두르는 것과 총을 한 발 쏘는 것은 무게가 다르다. 총기 규제가 빡빡한 일본에서 함부로 총기를 사용했다간 뒷처리가 곤란해지므로 사용은 사전에 정해진 인원만 사용하는 것이 관례다. 조무래기가 총을 들고 위협하는 정도는 괜찮지만, 발포 이후의 상황을 조직에서 책임져주지는 않겠다는 뜻이었다. 이를 전부 이해하고 실력 있는 소수의 인원만 조직 내에서 총기 사용 허가를 받았다.
다른 조직이 참여하는 자리는 그 자리의 성격을 차치하고도 은근히 감도는 긴장감이 있다. 좋은 뜻으로 모인 자리에서 작은 다툼이 큰 사고로 이어지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야쿠자 특유의 체면이라는 것이 서로 부딪히며 내는 소음은 어디서, 어떻게, 얼마나 날지 예측할 수 없다. 닛코는 연회장의 사치를 주문하면서, 동시에 손님을 무력으로 제압할 수 있는 무력을 대비시켰다. 적당한 호텔 라운지에 자리를 배치하고, 건물과 주변 곳곳에 사람을 배치해놨다. 보안을 명목으로 세워도 대놓고 배치할 수는 없는 인력이기 때문에 잘 보이지 않도록 은밀하게 숨어있는 쪽이 수가 많았다.
닛코는 성격상 연회장에서 빠질 수도, 관리자 측에서 완전히 빠질 수도 없어 연회장 내부에서 꾸준히 연락을 주고받기로 했다. 각 영역으로 나눠진 인력 중 머리가 되는 인원이 난센 이치몬지에게 보고하고, 난센이 자잘한 일을 걸러 중요한 일만 닛코에게 전달하는 구조다. 아무리 직접 발로 뛰는 것이 익숙한 닛코라도 연회장 내부 관리만으로도 바쁘기 때문에 피치 못한 상황이었다. 난센 또한 이를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닛코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동분서주 뛰어다녔다. 닛코의 계획은 완벽해보였다. 닛코는 잠시 검붉은 와인 한 잔을 음미하였다. 꽤 마음에 드는 향이 났다.
그럼에도 닛코가 예상하지 못한 것이 몇 가지 있다. 첫째, 이치몬지 노리무네가 오랜만의 연회를 이유로 일찍이 호텔방으로 올라가겠다 하여 연회 중 호텔 최고층 스위트룸까지 닛코가 함께했다. 둘째, 조직 내 중요 인물이 모두 모여야 하는 자리이기 때문에 히메츠루 이치몬지 또한 참석해야 했다. 닛코의 주된 임무 중 하나가 히메츠루를 타 조직에게 눈도장 찍고, 히메츠루 본인에게도 자신의 입지를 인식시키는 것이었다. 문제는 히메츠루는 이러한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았고, 닛코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연회장을 빠져나갔다. 당연히 자리로 돌아온 닛코는 히메츠루를 찾기 시작했다. 셋째, 위의 사유와 난센에게 주어진 부담감이 닛코에게 ‘보고’가 도달하는 것을 더디게 만들었다.
연회가 마무리 되어갈 즈음 겨우 연락을 받은 닛코가 현장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시체는 사라진 후였다. 난센의 주도로 시체는 훼손이 적게 보존되어 처리장으로 옮겨졌고, 핏물도 흔적이 남지 않게 정리 중이었다. 호텔에서 거리가 좀 떨어진 골목 근처였다. 주변에 CCTV나 사람은 거의 없다시피 했고, 총에는 소음기가 잘 장착되어 있었다. 총을 맞은 건 50대의 남자, 야쿠자로는 보이지 않았다. 술에 취했고, 시비를 거는 것을 조무래기가 받아치다가 우발적으로 총을 쏴버렸다고 했다. 골목 좀 더 안쪽에 공포인지 맞은 것인지 벌벌 떠는 놈이 보였다.
아무리 잘 처리해도 결국 언젠간 신고가 들어가고 수사가 시작된다. 일반인과 엮이는 사건이 항쟁보다 처리가 까다롭다. 조직 간 사건보다 일반인 사건을 경찰이 눈에 불을 켜고 쑤시기 때문이다. 이건 산쵸모의 회장직 취임에도 영향이 갈 수 있다. 아까 마신 와인잔을 어떻게 했더라, 깨졌던가? 닛코가 눈썹을 살짝 찌푸리고 있으니 난센이 옆에서 총을 건넸다. 닛코는 고개를 바닥에 닿도록 숙이는 것을 일으켜세워 검은 가죽 장갑을 낀 손으로 난센의 뺨을 때렸다. 보고가 늦었다는 것이 이유였지만 구태여 말하진 않았다. 난센도 자세를 고쳐 잡을 뿐이었다. 난센에게 현장 처리와 이후 경호 지휘를 맡기고 닛코는 총을 들고 자리를 떠났다. 그 길로 터미널에서 버스표를 구입하였다. 버스 출발 시각은 23시 47분이었다.
만국 공통으로 종교 관련 기관은 수사가 어렵다. 개방적이면서도 폐쇄적인 이중성이 존재하는 곳이 종교다. 처음부터 이를 노린 것은 아니지만 친분을 쌓아온 신사가 있다. 지금 있는 신관의 윗 세대와 노리무네가 접점이 있고, 산쵸모와 닛코가 이를 이어나가는 중이다. 현재는 닛코 측에서 종종 곤란한 것을 잠시 맡기고, 주기적으로 헌금을 보내거나 신사의 곤란한 일을 처리해주고 있다. 서로 적당히 선을 맞추며 상부상조하는 관계로 지내고 있다.
닛코는 휴대전화로 2시간 뒤에 신사에 도착할 것이라는 메일을 보냈다. 자가용을 타면 1시간이 조금 덜 걸릴 거리지만 당장 운용 가능한 차량 중 눈에 띄지 않을 것이 없었다. 신경이 곤두선 닛코에게 작은 흠도 너무 크게 느껴졌다. 결국 닛코가 홀로 고속버스를 타고 다녀오기로 결정했다. 1시간 반을 고속버스로 보내고 신사 근처까지 가는 마을버스를 기다리는데 1시간이 소요됐다. 별다른 연락이 없는 것을 보면 난센 쪽에 문제가 더 발생하지 않은 것 같지만, 담배만 한 갑 가까이 피웠다. 결국 4시간 정도 걸려 신사가 있는 동네에 도착했다. 시골의 작은 버스는 탑승감이 좋지 않았다.
아직 해가 다 뜨지 않아 옅고 푸르스름한 하늘로 새까만 새가 몇 마리 날아올랐다. 새벽의 찬 공기가 폐를 훑는 느낌이 선명했다. 신사는 산속에 있고 택시가 다닐리 전무하므로 정류장에서 한참을 걸어야 했다. 집이 드문드문 서있고 사람 그림자도 보이지 않는 마을에 검은 정장의 닛코만 걷고 있었다. 검은 자켓 속에 뜨거운 빛을 낸 차가워진 쇳덩어리를 숨기고. 버스를 타기 전에 인사용으로 산 과자세트는 반대쪽 옆구리에 끼웠다. 옷으로 감싸도 총과 선물와 겹쳐 들기는 께름칙했다.
신사에 자주 일을 맡기진 않았다. 맡겨도 일시적이고, 일은 엮이는 사람이 적을 수록 처리가 편한 법이니까. 노리무네는 ‘신이 내리는 찰나의 유예’라는 표현을 썼다. 만능처럼 여기지 말라는 뜻이다. 닛코도 동의하는 바였다. ‘그래도 신한테 잘 보여서 나쁠 건 없다’라는 말에도 동의하여 헌금도 제때 보냈고, 명절에는 인사를 오기도 했다. 신관은 저를 꽤 마음에 들어하는 눈치였다. 이른 시간인만큼 답장은 오지 않았지만, 이번에도 자비를 베풀어주길 바랬다. 다리 아래로 흐르는 하천 소리가 시끄러웠다. 닛코의 구두 소리가 거센 물소리에 묻혔다. 물소리가 멀어질 때 즈음 신사로 들어가는 입구에 다다랐다. 끝없이 기다란 나무 아래로 꽤 높은 돌계단이 한참 이어졌다. 나무 그림자로 어두운 계단 끝에 새어들어오는 빛이 밝았다. 흔한 풀냄새도 나지 않았다. 계단을 오르는 길에 수풀 속에서 소리가 났다. 신관이 주변에 야생 동물이 산다고 했던 것이 떠올랐다. 무슨 동물이었더라…
붉은 토리이 몇 개를 지나면 소박한 크기의 신사 건물이 세 채 정도 있다. 자잘한 기념품을 파는 건물이 동시에 신관이 사는 곳이다. 창 너머로 사람이 보이지 않아 닛코가 문을 두드리려는데,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났다. 이번에도 동물의 소리일 거라 생각하던 닛코는 생각을 고쳤다. 따각, 하고 무언가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바닥에 깔린 돌과 딱딱한 것이 부딪히는 소리. 이 시간에 신사에 있을 만한 건 신관과 같은 신사 관계자, 아니면 신자, 아니면… 최악의 수까지 생각한 닛코가 자켓 아래에 손을 넣고 천천히 걸었다. 참배를 드리는 배전 쪽이 아니라 건물의 뒷편. 한 발만 격발했다 했으니 다섯 발이 남아있다. 민가에서 거리가 꽤 있고, 소음기도 제대로 장착하고 있다. 신관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지는 나중에 고민하기로 했다.
다행히 닛코가 총을 꺼낼 일은 없었다. 돌바닥에 게다를 부딪히며 소리를 내는 것은 한 소년이었다. 푸른 머리에 짙은 피부, 하얀 기모노에 금색 하카마를 두른 소년이 붉은 눈을 반짝이며 보고 있었다. 예사롭지 않은 분위기에 닛코가 잠시 당황했지만, 신관의 자식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 사는 녀석이냐.” 닛코의 질문을 듣기는 한 것인지 소년은 반응이 없었다. 자식은 다른 곳에서 살 수도 있겠지. 예의 교육은 약간 부족하지만, 어린 아이 특유의 활기는 느껴지지 않는 것이 어른스러우면서도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신관의 자식이라면 납득이 될 것 같았다. 닛코가 다가가도 소년은 멀뚱히 바라보기만 했다. 닛코가 자켓을 부스럭거리자 그제야 시선을 내려 닛코의 손을 보았다. 닛코는 잠시 고민하다가 자신의 장갑 한 쪽을 벗어 소년의 한쪽 손에 천을 덮듯 얹었다. 검은 가죽 장갑에 소년의 작은 손이 완전히 가려졌다. 장갑을 낀 손으로 장갑 위에 총을 올려두고, 장갑을 벗은 손으로 소년의 손등부터 덮어 총을 쥐게 했다.
“이렇게만 쥐고, 더 만지지 말고서 신관께 전해드려라.”
손을 떼니 총 무게에 소년의 손이 약간 아래로 내려갔다. 아예 못 들 수준은 아닌 것 같아, 옳지, 하며 격려했다. 사온 과자세트를 소년의 옆구리에 끼워줬다. “그건 네가 먹어라.” 소년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고 닛코는 뒤를 돌았다. 여전히 어두운 하늘이었다. 난센에게서 연락은 오지 않았지만 돌아가서 상황 확인은 할 필요가 있었다. 한껏 구겨진 자켓을 더듬거렸지만, 담배는 버스를 기다리며 다 피웠었다.
가장 빠른 차를 타고 돌아간 닛코는 일처리로 바빴다. 시체와 흉기를 숨겼으니 당장 밝혀지진 않겠지만, 마냥 손 놓고 있을 수는 없다. 최대한 문제 없게 일처리를 하는 것, 지금부터 닛코가 해야 하는 일이다. 연회가 완전히 마무리 되기 전에 자리를 떠난 것에 대해 설명하는 겸 보고를 올렸다. 산쵸모는 소파에 앉아 눈썹 하나 움직이지 않고 닛코의 말을 듣다가 “믿겠다.”는 말만 한마디했다. 닛코는 문제 없도록 하겠다는 말밖에 할 수 없었다. 저녁 때가 되어서야 신관에게서 온 ‘오늘 안 오시나요?’라는 메일을 받기 전까진.
이번에는 자신의 자가용의 페달을 밟았다. 눈에 띄지 않고 말고를 고려할 때가 아니었다. 그 소년이 아직도 그 마을에 있을 것이란 보장은 없었지만 못 찾아도 안 되는 상황. 담배를 물 여유도 없었다. 닛코는 자신의 안일함을 탓했다. 그럼에도 해결해야 했다. 후쿠오카 이치몬지파의 와카가시라 보좌, 닛코 이치몬지니까. 노을이 지기 시작하는 붉은 하늘엔 구름 한 점도 없었다.
다행히 소년은 금방 찾을 수 있었다. 신사로 올라가는 계단 도중, 부스럭 소리에 고개를 돌리니 하얀 기모노가 눈에 들어왔다. 검은 숲속을 내달리는 하얀 동물로 보일정도로 빠른 걸음이었다. 닛코는 망설임 없이 계단을 벗어나 숲으로 따라 들어갔다. 광택을 내는 검은 구두에 사정 없이 흠집이 났다.
한참을 소년을 쫓아 숲속 깊이 들어가니, 어느새 시야에서 나무가 사라지고 넓은 들판 같은 풍경이 펼쳐졌다. 그런 사소한 것들은 닛코에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탁 트인 들판에 소년이 서있었다. 붉은 하늘에 어둠이 깔리기 시작했다. 닛코가 소년에게 다가가려고 하자, 소년이 한 쪽 기모노 소매에 손을 넣었다. 다시 꺼낸 손엔 검은 쇳덩어리가 들려있었다. 소년이 그대로 손을 하늘로 뻗자, 이윽고 빛이 번쩍거렸다.
소년의 얼굴 앞으로 붉은 금붕어가 헤엄치는 것을 보았다. 익숙한 붉은색. 그것은 금붕어가 아니라 핏덩어리. 그리고 하늘에서 소년 옆으로 무언가 투둑 떨어졌다. 소년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듯 떨어진 것을 무시하고 닛코를 향해 걸어왔다. 들고 있던 총을 도로 기모노 소매에 넣더니, 이번엔 가슴팍에 손을 넣어 검은 장갑 한 쪽을 꺼냈다. 장갑으로 자신의 얼굴에 튄 피를 슥 훔쳐내는 동작이 우아했다. 여전한 무표정한 얼굴에 옅게 웃음이 실려 보였다.
“안녕, 닛코.”
소년의 입 사이로 유난히 뾰족한 송곳니가 보였다.